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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호 기독교적 가르침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8-06-04 14:57:14 조회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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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현장에서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것의 의미 (Ⅰ)



                                소종화(기독교 교육과정연구소 대표. 현 비전중)

 

우리가 수업지도안을 작성할 때, 성경의 이야기를 첨부했다고 해서 기독교적 수업지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업지도안에 포함된 내용이 성경적 관점으로 작성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 교육과정 대부분의 책에 제시된 기독교적 교육과정의 틀은 몇 가지 요소를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다. 수업목표, 수업내용을 창조•타락•구속으로 분석, 가치(value), 학생들이 알고 이해해야 할 핵심 내용과 이것을 위한 핵심 질문들(essential questions), 평가 등이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다시 배열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입, 전개, 정리, 평가의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과정에 학생의 은사를 고려한 학습 스타일을 강조하며, 지식과 가치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학생관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마땅히 그리스도인 교사가 작성한 수업지도안은 일반 교사들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지도안을 작성하는 훈련 과정으로 몇 번 시도해보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을 학기 중 계속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데 있다. 기독 교사들은 학교 현장 가운데에서 생활할 때 일반 교사들에 비해 할 일도 많고 무척 분주한 것이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기독교사들은 기독교적으로 수업지도안을 작성하려고 고민하며 다른 일을 못하는 것보다 오히려 생활지도, 상담, 학생들과 함께 좋은 추억 만들기, 봉사하기 등 학급운영과 전도, 양육을 통해서 기독교사로 헌신을 하기 원한다. 이 말도 일리가 있다. 학생들은 단지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한 깨달음보다는 예수님의 삶 자체로 인해 배운 것이 많았다. 깨달음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기초로 하여 나온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의미 있는 교사로 서 있는 것은 정말 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은 몹시 중요하다. 지식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따라 학생들은 삶을 좌우하는 관점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은 학생들이 살아갈 때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을 견지하는 일은 교사로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 기독교사들이 고민해야 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첫째, 북미의 기독교 교육학자들이 제시한 기독교적 교육과정의 개발을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형식을 보면, 일반적으로 수업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합당한 성경적 해석을 강조한다. 창조, 타락, 구속의 틀로. 그리고 나서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핵심적인 사항을 적고, 그것에 적합한 질문을 만들며, 수업목적과 내용에 따라 자료를 선정하고 적절한 교수법을 구상한다. 우리는 종종 이들의 가르침을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즉, 목표부터 차근차근 빈 칸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자신의 교수-학습안을 디자인 한다. 우리는 실제로 목표지향적인 Tyler의 모델을 비판하면서도 Tyler의 일차원적 수업지도안 작성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북미 기독교 학자들이 제시한 수업지도안을 일차원적으로 작성해 나간다. 우리들은 책의 저자들이 의도하지 않게 이들이 제시한 틀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가장 좋은 모델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에 맞는 의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성경적 수업목표를 세우고 수업내용에 대한 분석을 하다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우리는 먼저 교과서의 내용을 잘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지식과 기술을 잘 배우도록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교육과정의 틀에 얽매여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교육과정의 개발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기독교적 교육과정이 오히려 짐이 되고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

책에 제시된 기독교적 가리침의 양식은 ‘정리’된 것일 뿐이다. 정리된 내용대로 흉내를 내는 것은 불편하며, 설사 그대로 개발했다하더라도 우리 교사들의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교과서의 가르칠 내용에서 중요한 것, 생각할 것,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 그리고 왜 내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왜 학생들이 그 문제를 보다 깊이 생각하길 원하는지, 교과서의 내용 중 그 부분이 왜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것을 바로 잡으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생각한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학습목표로 정리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를 가르치기 위한 자료들을 찾아 수업에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둘째, 기독교적 가르침은 항상 매 시간마다 구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기독교적 가르침은 매 시간마다 구별되기도 하고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만일 구별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통합은 기독교와 수학과 같이 완전히 다르며 서로 상관이 없는 실재의 두 요소가 있음을, 그래서 우리가 그 둘의 관계를 만들거나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어떤 다리를 만들어 기독교와 수학을 연결하는 것이 통합이 아니다. 실재는 오직 하나이며, 실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 분의 통치 아래 있기에, 그 분의 자녀이면서 그 분의 형상을 지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숙한 기독교사는 한편에 믿음, 다른 한편에 교과 내용을 가지고 서로 연결점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사 안에 기독교적 태도와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적 시각이 근본적으로 형성되고 배어 있어야 한다. 즉 통합은 서로 분리된 다른 지식과 믿음을 합할 의무가 아니라, 진리는 이미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시각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과학적 시각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다르다. 과학적 관점을 기초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학주의적 사고를 의미한다. 동시에 신학적 방식으로 과학적인 문제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잘못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 둘은 모두 지식을 얻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모두 모아 하나로 짜깁기 하는 것은 통합이 아니다. 통합은 모든 지식이 ‘하나님이 근원’이라는 것에 근거한 세계관적 표현이다. 이 세상 학문은 모두 하나님을 기초로 한다. 하나님이 깨닫도록 하셨기에 학문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을 우리는 일반적 은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모든 내용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이 고백을 통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게 된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그 주장이 무엇인가? 인간의 이성 강조, 자율적인 세계 등 하나님의 손길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우리는 과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화론이 그 대표인데, 진화론은 두 가지 큰 전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공동의 조상’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적응’이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시간 혹은 사회시간에 진화론이나 진화론의 영향을 가르칠 때, 무조건 잘못되었으며 창조론이 맞다고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협소하다.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배척하는 방향이다. 하나님을 배척하고, 이 세계의 형성은 창조가 아닌 자율적 형성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인간들이 천군만마의 힘을 얻게 된 계기가 진화론이다. 진화론을 계기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구실을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과학적 허점을 공략하는 것도 좋지만, 진화론이 발표되기 이전보다 이후에 자율적 인간, 이성의 강조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폭넓게 가르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각 교과에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가르침에서 이런 부분이 있는지 서로 노력하면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왜곡된 부분을 찾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매 수업시간마다 뭔가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면 우리의 걸음이 너무 무겁다. 물론 기독교적 가르침과 세속적 가르침은 매 시간마다 구별되겠지만, 그것은 가르침의 방식, 학생에 대한 이해,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태도 등 다양하게 구별된다. 반드시 수업내용에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한 단원 정도는 가르쳐야 내용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교사의 시각을 학생들이 느낀다. 일 년 동안 여러 단원을 가르치면 내용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일관된 시각을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연간 지도 계획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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