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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호 대안학교 이슈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8-06-04 14:58:36 조회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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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자율화 조치 - ‘버림’과 ‘남겨둠’의 미학에 대하여

 

임태규 / 기독교대안학교연맹 사무총장

 

지난 4월 15일 교육과학부에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한 직후, 필자가 평소에 존경하는 서울여대의 김선요 교수님께서 학교 자율화 조치를 정원 조경 작업에 비유하여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버릴 것은 버리고, 남겨 놓을 것은 남겨 놓는 일이다. ‘버림과 남겨둠의 미학’ 이 말은 굉장히 평범하고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르긴 해도 이 일을 행하는 것은 가장 고민스럽고 가장 어려울 것이다. 정원에 굉장히 좋아 보이는 나무 한 그루도 어떨 때는 뽑아 버릴 필요가 있고, 또 정말 불필요하고 하찮아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그것을 그냥 남겨두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진정한 자율을 위해서는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한편 자율화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버려서는 안되고 비록 불필요해 보일지라도 남겨 둘 것이 있는 법이다. 자율은 자기 스스로가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떤 외적인 권위나 자연적 욕망에 구속되지 않고 이성적 능력으로 행위와 책임의 주체된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자기 규제 능력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학교자율화 계획이 적절한 조치였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학교가 교육의 자율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자기 규제 능력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면 된다. 자기 규제 능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대학입시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번 학교자율화 조치의 내용의 주된 골자는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서 학교 중심의 자치기반 마련하겠다는 취지 아래 교육의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29개 지침을 즉시 폐지하고 이어서 규제성 법령 조항 13개를 6월 중에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단위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은 학교가 직접 결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자율화 조치가 입시 경쟁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이제까지 단위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을 보다 빨리 등교하게 하여 수업을 받게 할 수도 없었고 사설 학원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도 마음껏 볼 수도 없었으며 보충 자율학습도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위 0교시 수업도 가능하게 되었고,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에도 학교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며, 수준별 이동 수업도 학생, 학부모들의 요구나 수준에 따라 적절한 수업 방법을 자유롭게 결정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이번 조치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0교시 수업은 아이들의 등교 시간을 좀 앞당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학교 현장에는 영재도 있고 학습 부진아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반을 편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아이들의 학력을 보다 넓은 표본 집단 안에서 측정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사설 모의고사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가? 방과 후 보충 수업을 좋은 강사진을 확보하여 학교 안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밤늦게까지 수업하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된 일인가? 어차피 아이들을 정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비싼 돈을 들여서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가게 마련인데 이것을 학교가 수용한다는 것이 뭐 그리 나쁜 일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조치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단위학교에 주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적인 모습으로만 이번 조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다.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교육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안전장치들은 제거된 것과 다름없는데, 문제는 앞으로 학교 현장은 오직 입시를 위하여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된다는 데 있다. 학교의 본 수업 안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능력과 소질을 고려하여 개별학습이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 방법을 구사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한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교실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 강 건너 불을 보듯이 학교의 본 수업은 급격히 무너질게 뻔하다. 이 가운데에서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하여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소위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서 자기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말 할 수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공부한다면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학교, 학생, 교사들은 교육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학교는 학교끼리 경쟁을 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경쟁을 하고 교사는 교사들끼리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소용돌이를 기독교대안학교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이번 학교자율화 조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교육의 변화가 곧바로 기독교대안학교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 현장이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게 되면 기독교대안학교도 경쟁의 장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 속에서 교육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경쟁의 논리를 어느 누가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대안학교측은 뒷짐이나 지고 공교육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켜보아서는 안된다.

학교 자율화 계획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교육의 자율과 자치를 바탕으로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유도하고 학교 운영에 관한 권한을 학교 구성원에게 돌려주자는 데 있다. 의도는 좋지만 그러나 정작 이번 조치는 대학입시라는 굴레에 갇혀서 자율과 자치보다는 오히려 타율과 강제로 나타날 소지가 있으며 학교 교육을 다양화시키기 보다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획일화시킬 공산이 더 크다. 그렇다면 문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학교 자율화 조치에 상응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진정한 학교 자치가 가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두 번째로 학교 내에서의 건강한 교육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세 번째로 학교의 본 수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수업 방법 개선과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독교대안학교는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정신을 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이와 같은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대안학교는 이번 조치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오히려 이 조치를 선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독교교육을 추구하는 기독교대안학교라고 하더라도 걷잡을 수 없이 세속화되어 가는 교육 격랑 가운데서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없을 때가 참으로 많을 것이다. 자칫하면 앞이 보이지 않아 세속학교 뒤를 따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관련 규제들을 무조건 버린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무조건 남겨 둔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교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 없으며 무엇을 남겨 놓아야 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버림과 남겨둠의 미학을 생각하자. 이 미학의 기준은 학생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배움터에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반드시 생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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