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관리자 > 웹진게시판
제목 9호 기독교적 가르침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8-03-28 10:58:48 조회 1321
홈페이지

 

국어를 ‘기독교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김태현(안양 백영고 국어 교사, 기독국어교사 모임 대표)

 

1. ‘기독교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독 교사의 가르침이 일반 교사와의 가르침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 아마 현장에서 교사를 하는 기독인이라면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자신의 교수 형태를 점검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질문은 하지만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리기란 힘이 들다. 그것은 수업 현장에서 ‘기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많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기독 교사들은 ‘기독교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행위로 생각할 때가 많다. 수업 시간에 기도를 하고, 복음을 잘 전달해서 학생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기독 교사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참 아름다운 행위다. 복음을 전해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 정말 우리 기독 교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선교적인 관점에서만 수업을 하게 되면, 교육이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하게 된다.

  학교는 창조 세계에 대한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다. 그리고 그 배움을 실천하는 장소다. 그런데 지나치게 선교적인 내용만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 교회 성경 공부와 학교 공부가 다른 점이 없게 된다. 학교에서는 성경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에 관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어떻게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친구들과 협력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만 전달하면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온전히 개발하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적인 가르침’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에 맞는 반응을 하게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는 창조 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지식은 파편화 되어 있고, 삶의 맥락이 무시된 채 학생들에게 암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머리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라고 가르칠 뿐, 지식을 통한 실천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를 배울 때, ‘시’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배우지 못한다. 그냥 이 시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다고 외운다. 시를 통해 아름답게 세상을 표현하고, 자기 내면과의 만남은 무시된다. 수학을 창조 세계의 질서로 배우지 않고, 단순히 숫자 풀기로 배운다. 그래서 수학을 통해 질서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하고, 문제 풀기에만 급급하다. 음악을 통해 삶의 수많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노래 계이름을 외우기만 바쁘다.

  결국 기독교적 가르침은 교육 현장에서 무시되고 있는 각 존재의 목적들을 되살리고 복원하는 수업이다. 머리로만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게 하는 수업에서 벗어나, 지식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목적을 가르치고, 그것에 맞는 실천을 알게 하는 교육이다.
 

2.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가르칠 것인가?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교육과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선생님들은 공교육에서의 ‘교육은 가치중립적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 과학적으로 증명이 확실하게 된 것, 모든 사람들이 상식 수준에서 알만한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과에 있어서 내 생각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인정될 만한 것들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보편적으로 인정될 만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그 순간, 그 교육은 이미  ‘교육은 보편적으로 인정될만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가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곧 학교 현장에서도 우리가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어떤 가치나 철학이 이미 깔려 있다. 이것은 학급 경영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교과 수업에서도 교사가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교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의 기초>에서 에들린도 “교육은 교육목적이나 과정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신념, 혹은 세계관, 종교적 관점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말하며 “교육에서 종교적 중립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실제 교육현장 가운데서 행하여지는 수업의 형태에 따라 우리는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분류 할 수 있다.

 

교과 중심 교육과정

학생 중심 교육과정

기독교적 교육과정

지식관

 지식은 정보다.

 지식은 의미 있는 경험이다.

 지식은 삶에서의 바른 반응이다.

진리관

진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보다

진리는 개인의 의미 있는 경험이다.

진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과 교제하고 그 분께 헌신하는 것이다.

학생관

 너희는 많이 모른다. 나에게 많이 배워라.

  너희가 이미 진리다.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느껴라. 그리고 표현하라.

  너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분의 뜻에 어긋나 있다.

가치관

 무조건 많이 외워라

무조건 많이 경험하라

 삶에서 바른 반응을 해야 한다.

교과관

지식 정보전달의 도구이다.

삶의 경험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다.

나와 너,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도구다.

  
  기독교적 교육과정은 교과중심의 교육과정과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과는 다르다.
교사가 어떤 교육과정을 취하느냐에 따라 수업의 형태는 달라진다. 기독교교육과정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공교육 현장은 국가 교육과정과 교사 개인 교육과정에 의해 여러 가치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독 교사는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기에 앞서, 자신은 어떤 교육과정의 수업을 하고 있는지를 잘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세계관에 의해 학생들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3. 국어 교과목의 실제

  쓰기 수업에서도 ‘교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수업 형태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쓰기에서 A와 같은 교과 중심 교육과정은 쓰기의 전략만을 기계적으로 외울게 할 것이다. ‘쓰기 전’, ‘쓰기 중’, ‘쓰기 후’로 활동들을 나누어, 학생들에게 같은 활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쓰기의 기능을 익히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쓰기를 통해 삶을 만나고 내면을 표현하기를 포기하고,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된다.

  B와 같은 학생 중심 교육과정에서 글을 쓰게 되면, A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B와 같은 수업에서는 학습자를 교육에서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므로, 그들의 재미와 흥미를 고려한 쓰기 수업이 계속 진행된다. 그러나 B와 같은 쓰기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표현만 있을 뿐,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없다. 쓰기는 단순히 생각의 발산적인 사고를 열어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개인이 쓰기를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쓰기를 통해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고, 삶의 거룩한 진리를 만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런 쓰기 교육은 고삐 풀린 천재만을 양육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C와 같은 기독교적인 교육과정의 쓰기는, 삶을 더욱 더 깊게 이해하고 내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이미 쓰기에 목적이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쓰기는 단순히 쓰기 기능을 익혀주는 것도 아니고, 창의적인 생각만을 표현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쓰기는 나를 만나고 너를 섬기고, 우리를 만들어 가는, 삶의 소중한 매개이다.
 

  예를 들어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라는 단원을 쓰기 수업으로 가르친다고 할 때, 각각이 관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수업이 구성될 수 있다.

 

 A(교과 중심 교육과정)

B(학습자 중심 교육과정)

C(기독교적인 교육과정)

학습 목표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대해 쓸 수 있다.

김구 선생처럼 글로 <나의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김구 선생처럼 삶에서 가치적인 비전을 꿈꾸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꿈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학습 내용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분석하고 그의 소원 이해하기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읽고 느낀 점 자유롭게 말하기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속에 담긴 가치적인 비전을 이해하고, 그러한 꿈을 어떻게 가지고 이루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쓰기 과제

김구 선생의 소원에 대해 서술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적으시오.

김구 선생처럼 <나의 소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표현하시오.

김구 선생과 같은 가치적인 비전을 설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서 표현하시오.

평가 요소

김구 선생의 소원에 대해 제대로 서술하고 있는가?

나의 소원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가?

가치적인 비전을 잘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려는 열망이 잘 표현되어 있는가?

  
  위와 같이 수업이 진행된다면, A와 같이 진행된 수업에서 학생들은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삶과 연관 짓지 않는다. 단지 그 속에 있는 내용만 저장되어 있다. 이미 쓰기가 삶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B와 같은 수업을 든 학생들은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데 열중할 것이다. 김구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중요하다. 세상의 성취적인 꿈들, 예를 들어 대통령, 변호사, 의사가 되기 위한 자신의 야심만을 늘어놓게 된다. 결국 B의 수업을 든 학생들은 자신의 꿈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른 채 ‘내 꿈이 최고야’라는 생각 속에서 쓰기를 감행할 것이다.
C와 같은 수업을 든 학생들은 ‘가치’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구 선생과 같은 가치를 품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때론 자신의 꿈이 지나치게 성취지향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은 어떤 가치를 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글을 쓰게 된다. 단순히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허준과 같이 가난한 자를 돕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고민하며 글을 쓴다.

4. 우리의 사명

  결국 어떤 색깔로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서 학생들의 철학, 삶의 관점이 달라진다. 기독 교사는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에 나온 대로 수업을 해서는 안 된다. 한 번 쯤 ‘내가 어떤 관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내가 가르치는 교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독인들은 항상 어떤 현상에 대해 영적으로 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분별한다. 내가 하고 내린 결정이 하나님께서 좋아할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영적인 행동, 종교적인 행동에서만 국한 되서는 안 된다. 즉 ‘내가 이쪽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저 사람을 어떻게 섬겨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분별해서는 안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수업의 영역에서도 영적인 분별을 해야 한다. 지나치게 내 수업을 낮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큰 문제다.

  기독교적인 수업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목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일궈내는 수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 지식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적절한 학생들의 반응을 일궈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에 대한 정말 많은 고민과 기도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수업을 통해 창조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경영하는, 책임 있는 제자가 수없이 많이 나오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추신) 지면 관계상 기독교적 가르치기에 대한 밑그림만 그렸다. 기독교적 가르침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다면 기독국어교사 모임 홈페이지 을 방문해주길 바란다. 기독교적 가르침에 대한 실제적인 영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COUNTER